즉, 정재승은 '의미 없는 시간 소비'를 못 견뎌하고,
'생산적인 일'에 쾌락을 느낍니다.
그래서 시간 사용법 역시 이 부분에 치중하게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재승에게는 부족한 점도 간간히 눈에 띕니다. 촉망받는 학자인 정재승의 약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먼저 장면 1. 알쓸신잡 통영편
유시민: "일제시대때 호구조사를 하게 되면서, 누구나 다 성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왜 김씨가 그렇게 많겠어?"
유희열: "아! 진짜 김씨중에서 김씨가 아닌 사람도 있겠네요."
유시민: "그래서 동성동본은 혼인이 안된다, 이런 얘기는 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지. (진짜 동성동본이 아니기 때문에)"
유시민: "(정재승에게) 호주제 헌법소원을 냈을 때, 동물행동학자 최재헌 선생님이 공술인으로 나가서, 생물학과 호주제의 관계에 대하여 진술했잖아."
정재승: "호주제, 그러니까 아버지의 성을 계속 따르는 것이, 사실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심지어 엄마 성을 따르는 것은, 미토콘드리아의 유전자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를 찾을 수 있는 모계를 따르는 게 더 낫다. (라는 주장도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mRNA를 통하여 계속 내려온다."
유시민: "아프리카 중부 내륙 어느 지역에서 최초의 인류가 나와 지구 전체에 퍼지게 됐다. 그런데 부계는 초적이 불가능한데, 모계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적함으로써 경로 추적이 가능하다. 굳이 호주제를 하려면 모계로 하는 것이 더 과학적이다."
김영하: "누구의 소속으로 만들 필요가 없고, 그냥 가족 관계도만 잘 정리해 주면 된다. 옛날 호주제의 경우, 아버지가 호주였는데 돌아가시면, 그 어린 아들이 그 집안의 호주가 되어서, 여성들은 다 거기 소속되도록 했단 말이다."
여기서 나온 과학적인 오류는 바로 '모계 추적에 사용되는 것은 mt-mRNA가 아니라 mtDNA'입니다.
게다가 Y염색체를 이용해서 부계를 추적할 수도 있죠.
이런 과학적인 오류는 사실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술자리 신변잡기 예능에서, 고도의 과학적인 검증을 요구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나영석 PD를 비롯한 제작진이 자막으로라도, 유시민과 정재승의 오류를 짚어주었으면, 예능의 재미는 재미대로 살면서, 시청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아쉬운 점을 짚을 수 있습니다.
먼저, 정재승에 대한 아쉬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천문학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한 책이자 다큐멘터리입니다.
과학 다큐멘터리중에서 이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나고, 오류가 적은 책 (및 다큐멘터리)도 드물지요.
그런데 초판에서 칼 세이건이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무와 사람은 DNA가 같지만, 에너지를 얻는 방법은 다르다. 이 이유에 관해 DNA 외의 다른 요소가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구 중이니 (언젠가) 미래에는 밝혀질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 다큐멘터리 업데이트 장면에서 백발이 된 칼 세이건이 직접 출연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하여 RNA의 존재가 밝혀졌다. 사람과 나무의 DNA는 같지만 에너지를 얻는 방법이 다른 것은 RNA 때문으로... (중략)"
항상 과학에는 미지의 분야가 있고, 과학자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분야에 대하여 겸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 장면입니다.
정재승의 과학 오류도 문제이지만, 이런 태도가 부족한 것이 좀 아쉽네요.
그 외에도 이 장면에서의 아쉬움은 남습니다.
사실 호주제는 여러 차례의 폐지 위험을 겪다가 지난 2008년에 정식으로 폐지가 됩니다.
당시 일부 유림에서는 이에 대하여 극렬하게 반발을 하면서,
'호주제 폐지는 종북이다'라는 주장을 했고,
일부 보수단체 역시 이에 적극 동조하여 이념 논쟁을 펼칩니다.
사실 정상적인 유림이나 유교 신봉자라면, 오히려 당시 호주제의 폐해를 지적했어야 옳았습니다.
아버지가 죽는다고, 나이 많은 어머니가 아직 어린 아들의 밑으로 들어간다?
이는 남녀의 문제 이전에 부모 자식간의 문제이고,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호주제의 폐해를 문제시 삼고, 이를 개선하도록 노력해야겠죠.
당시 일부 유림과 기득권층이, 끝까지 이념논쟁을 주장하면서,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욱더 확산시켰죠.
유시민이라면, 이런 점을 한번 제대로 짚어줄 수 있었을텐데, 단순히 미토콘드리아 설명에만 너무 집착을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다음에, 같은 통영편에서의 난중일기 문제입니다.
이건 좀 더 많이 아쉽네요.
유희열: "(난중일기, 즉 개인의 일기니까) 누구 욕도 써있고 그래요?"
김영하: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욕을 많이 썼어요 원균 욕은 ..뭐... 6월 2일 원균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분이 참담하다 포악하기 이를 데 없다. 등등. 그런데 원균이 쓴 기록이 없어요."
유시민: "그거를 생물학에서는 적자생존이라 그래요."
김영하: "아 적어서 생존하는.. 그거를 아재 개그라고 합니다."
즉, 대화의 맥락을 살펴보면,
이순신은 난중일기를 적었기에 후세에 유리한 평가를,
반면에 원균은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에, 후세에 박한 평가를 받게 된다는 문맥 흐름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만약 원균이 본인의 '일기'를 남겼다면,
오늘날 이순신과 원균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사실 이순신과 원균의 차이는 단순히 기록 (난중일기)의 유무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순신의 사적 일기 (난중일기)는 수많은 '교차 검증'을 거친 훌륭한 역사 기록물입니다.
개인적인 일기의 차원을 이미 벗어난 '공적인 기록물'로 분류가 되죠.
분명 여기서 유시민의 말은 '유머'였습니다.
술자리에서는 이렇게 '반어적으로 표현'을 하거나, 혹은 '위대하거나 훌륭한 인물'을 악의없이 까내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모두가 술자리의 흥미를 위해서, 좌중을 웃기기 위해서 이런 행동이 나오는 것이죠.
하지만 알쓸신잡의 경우는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방송'입니다. 따라서 유시민의 농담에 대하여, 제작진이 적절한 자막을 달아주었더라면, 혹은 방송 후기로 제작진이 이에 대한 유시민의 인터뷰를 추가하여,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사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술자리에서의 농담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자유한국당의 원유철이 원균의 직계 후손이고, 그의 지역구인 평택에서는 원균 재평가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후세를 위하여 조그마한 불씨라도 남기고 싶지 않네요.
아무튼 이런 사소한 결함들을 제외하고 알뜰신잡은 대단히 재미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어서 빨리 시즌 2가 나오기를 바랄 정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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